공지사항
날씨 풀렸지만 희망 없어요
관리자
2005.04.25
조회 3,033
“날씨 풀렸지만 희망 없어요”
노숙자들 겨우살이 끝내고 다시 거리로 나온다
윤두현기자 ydh117@munhwa.com
“꽃피는 봄이 온 지금이나 지난 겨울이나 희망 없이 살기는 마찬가지야”
겨우내 힘겨운 겨울살이를 끝낸 노숙자들이 날씨가 풀리면서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희망없이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이었다.
23일 오전 1시 서울 영등포역 주변 고가도로 밑 쪽방촌. 100여m에 이르는 골목 한 가운데 화톳불을 피운 채 노숙인 10여명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었다. 노숙생활 9년째인 이모(42)씨는 “동거녀 몸이 아파 약값이라도 마련하려는데 파지줍기 경쟁이 치열해 돈벌이가 안된다”며 “그 놈의 술때문에 지난 겨울 이 골목에서만 10명 넘게 죽어나갔다”고 멍하게 하늘을 쳐다봤다.
눈 부위를 심하게 얻어 맞은 듯한 여성노숙인 신모(37)씨는 “저녁에 누가 날 두들겨팼다”며 횡설수설했다. 그는 줄담배를 피우다가 50대쯤으로 보이는 다른 남자 노숙자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제법 행색이 말끔해보는 젊은사람들도 몇명 눈에 띄었다. 영등포역 관계자는 늙고 힘없는 노숙자를 이용해 앵벌이(구걸)를 시키는 ¨악질¨이라고 귀띔했다.
오전 3시 서울 중구 서소문 공원 한켠 담벼락 밑과 가로등 밑에도 4~5명의 노숙인들이 두툼한 겨울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잠들어 있었다. 컴컴한 어둠속에서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걸어나오는 노숙인 김모(50)씨.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병원을 퇴원한 지난해 8월부터 노숙생활을 시작했다는 그는 충남 공주에 있는 처와 두 아들이 보고싶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날씨가 풀려도 서울역 역사는 여전히 노숙인들의 최대 안식처. 자정무렵 막차를 떠나 보낸 서울역 신역사는 거리노숙인들의 ¨점령공간¨으로 바뀌었다. 서울역사는 내부정리를 하는 오전 1시부터 2시까지를 제외하면 전면 개방된다. 새벽 1시가 되면 어김없이 쫓겨났지만 이곳 역사에서 지난겨울초 이곳에서 숨진 동료 덕(?)에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었다고 한다.
오전 2시 서울역 문이 다시 열리자 문앞에서 대기한 노숙자들이 박스와 신문지를 들고 봇물처럼 다시 역사안으로 밀려 들었다. 출입이 잦아 찬바람 들어오는 2층 보다 KTX 승차장이 있는 3층에 더 많은 노숙자들이 몰렸다. 좀 더 따뜻한 곳에 치친 몸을 누이기 위한 것이다. 서울역 상가 경비원들과의 말싸움도 자주 벌어진다. 한 경비원은 “새벽 5시쯤 세면장에서 한바탕 전쟁이 벌어진다”며 “빨래하고 목욕하는 사람까지 있다”고 말했다. 자신을 서울 모대학 축산학과 84학번이라고 소개한 권모씨는 “충청도에 있는 형이 같이 일하자고 하는데 차비가 없어서 못간다”며 차비를 달라고 했다.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에 따르면 현재 서울지역의 노숙자는 2813명. 이 가운데 거리노숙인은 541명이다. 센터 관계자는 “하절기인 5월부터 거리노숙인이 증가하다가 8월쯤에 급증하는 경향이 있다”며 “거리 현장에서 취업 등 자활을 위한 상담등을 벌이고 있지만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는 노숙인들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윤두현·이동현기자
ydh117@ munhwa.com / 기사 게재 일자 2005/04/23
출처 : 문화일보